짧은뉴스 긴생각 “만난 친구, 떠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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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주 시카고와 미시건주를 여행했습니다. 갈 때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올해따라 유난히 늦은 단풍들이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바람이 살짝 불면 작은 낙엽들을 떨구었는데 낙엽들은 붙어있는 잎들을 스치면서 후두둑, 마치 비 내리듯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시카고를 떠난 건 34년전입니다. 결혼을 한 후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왔습니다. 그 사이 시카고에 들른 일은 몇차례 있었지만, 하루 이틀 볼일만 끝나면 곧바로 돌아온 터 여서, 이번처럼 여유를 가지고 방문한 건 34년만입니다. 몇몇 친구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오기도 해서 그 사이 만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34년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루 저녁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몇몇은 수년만에, 몇몇은 십 수년만에, 몇몇은 34년만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모두들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감사하게도 건강했고, 우리는 전혀 서먹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스라히 남아있는 젊었던 날들의 기억들을 떠올리다가, 자식들 결혼을 화제로 삼았고, 손자 손녀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해대면서 깔깔거렸습니다. 저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34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친구들도 아마 똑같았던 모양입니다. 그 찾아지지 않은 흔적을 근거로, 우리는 결론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인생 살아보니 정말 별 것 아니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우린 동의했습니다. 앞으로의 날들이 지난 34년보다 더 빠르고 짧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새벽 2시가 다되어서야 모임은 파했습니다. 서로들 앞으로는 자주 보고 살자고 아쉬워했지만 기약은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웠더니, 마치 친구들과 만난 것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잠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 속에서 잠을 자는 듯 했습니다. / 아침에 일어났더니 첫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큰 눈은 아니었지만 세상 대부분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근처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저녁 즈음이 되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주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30여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그날 아침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평소 건강했던 친구였습니다. 몇 달 전 모임에서 만났을 때도 우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았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벼르고 별러,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온 사이에, 가깝게 살고 있던 친구가 떠난 것은 그저 우연한 불행인 것이 분명했지만, 그 타이밍이 제게는 기이했으며, 전날 친구들과 호기롭게 외쳤던, 살아보니 인생이 별 거 아니라는 말은 공포스러웠습니다. 또 하나 걸려온 전화에서 친구의 죽음은 조금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아침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급히 실려갔지만 소용없었다고 들었습니다. / 이런 류의 황망한 소식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저는 제 삶이 낯설었습니다. 낯설어서 자꾸 물었습니다. 헤어짐은 무엇이고 만남은 무엇인가. 시간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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